인생 수습 904일차 - 상담 일기 2, 나를 챙기는 목요일

 

_두번째 상담일기는 개인적 내용이 너무 많아서 어떤 내용은 듬성듬성 들어내었다_



* 지난번 상담이 어땠냐는 물음에 좋았다고 했다. 내 스스로 뭔가를 개선해보려고 애썼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작은 용기를 주는 것 같다고. 그리고 운이 좋게 잘 맞는 분을 만나서 감사하다고.



* 오늘은 가족 탐구 시간. 요즘 들어 감정의 회복탄력성이 눈에 띄게 줄어든것 같다고 하면서, 그 연원을 따져올라가며 이야기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친밀도를 숫자로 표현하고, 그 이유를 이야기하며 보냈다. ㅇㅇ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느냐고 해서 특정 시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이 시기를 설명하려고 할 때는 항상 눈물이 잔뜩 나는데, 어제도 어김없이 엉엉 울며 이야기했다. 그 시기가 나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가 꽤나 깊구나 생각했다. 그때 기분이 어땠냐고 하셔서.. 버려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무척 외로웠다고. 나는 나름대로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는데 주어지는 결과가 고작 이렇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 감정기복, 또는 다운되는 빈도를 이야기하다 내가 일주일에 3-4일은 그런 식으로 다운된 채로 잠드는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 워낙 인상이 밝고 선하고.. 뭐랄까 '또리또리'해서 3-4일이나 될 줄 짐작치 못했다고 하셨다. 그 포인트에서 나는 동기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한다고, 근데 요즘은 그게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인상도 밝고, 잘 웃고, 또리또리하고, 안정되고 좋은 팀에 있으니 당연히 힘듦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상태, 그런게 너무 지친다고 했다. 동기들마저도 자기들의 힘듦은 맘껏 토로하면서 정작 나의 상태는 묻지 않는다고. 그냥 괜찮겠거니, 잘 지내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다고. 가끔은 그냥 물어만봐줘도 좋겠는데 그런게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선생님은 내가 능숙하게 숨기며 지내왔고 그것에 익숙해져 표현을 더 안하다보니 주위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고 했다. 주는 기운이 밝고 구김살이 없어서 선생님도 나에게 직접 듣기 전까진 상상치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이 칭찬으로 느껴져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능숙히 감춰온 세월이 가엾기도 했다.



* 혼자 살아온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쭉, 가까이 또는 멀리 떨어져 살아왔다고. 대학을 고른 이야기,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계속해야했던 이야기. 얘기하며 많이 울었다. 선생님이 마침 대학교 상담도 많이 맡아보셔서 공감이 되셨는지 내가 우는 대목에서 같이 우셔서 너무 놀랐고, 한편으로 위로가 되었다. 혼자 지기에는 너무 많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네요, 하시는 말에 마음이 많이 찡해졌다. 선생님은 내가 성인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다려온것 같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서 경제력을 갖추고 정신적 물리적으로 온전해질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려온 것 같다고 하시는데, 제일 북받쳐 울었던게 이 대목 같다. 끅끅 우는 나를 보며 선생님도 덩달아 우셨다.



* 선생님과 목표를 설정했다. '흘려보내는 방법 찾기’. 동생들은 흘려보내기가 되는 사람들 같다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여동생은 확실히 그러하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당연하죠! 여동생은 줄곧 표출하며 지내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라고 하셨다. 그에 비해 나는 상대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와서, 내 안으로 그러안으며 살아와서 그런거라고. 내 안에 깊이 고이도록 하며 살아와서 그런거라고. 나는 대체 흘려보내기는 어떻게 하는거예요 라고 되물었다. 아마도 취준 시절의 내가 한참 날을 세웠던 날들이 내 나름의 흘려보내기를 해보려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 것 같아서, 흘려보내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처받진 않았을거라고 했다. 내가 ㅇㅇ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듯이 그 사람들도 ㅇㅇ이가 힘든 시기라 그렇겠지, 하고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을거라고.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이제라도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서운했던 일들도 이제라도 그때 정말 서운했다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내가 가장 힘들고 서운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을때 ㅇㅇ이가 그랬구나, 미안하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것 같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막 났다. 아마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저 상상만으로도, 그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응어리진 마음을 기꺼이 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도 잔뜩 떠올려두었다. 상담 의존증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요일 저녁 여섯시반이 좋아진다. 나 자신도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