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917일차 - 상담일기 4

* 모든 상담에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는거겠지. 앞선 두차례의 상담이 너무 강렬하고 밀도 있었던 탓에 오늘은 상담이 이래도 되나(이렇게 보송해도 되나)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 같은 자리로도 충분한 것 같다. 잔잔한 파도를 가만히 바라다보는 느낌.


* 조금 친해졌다고 느껴서인지, 오늘은 나의 대화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느낌이다. 인사이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었다. 엉엉 울었던 월요일 이야기도 했다. 동기들 이야기도 막 털어놓았다.


* 일단 동기 파트. 내가 가운데에서 접착제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버겁다고 했다. 인물 소개를 듣더니 H, M와는 조금 거리를 둬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마음을 활짝 연 J랑만 놀아도 되겠다고. 상담을 오기 직전에 m과 했던 대화가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져서 번아웃 상태였는데 선생님이 듣자마자 영양가가 없는 인물들 같다고,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들이군요, 해서 뭔가 속이 시원했다. 동기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갖는게 죄책감이 들었었는데. 선생님은 glue 역할을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단호히 말씀해주셨고 그게 도움이 되었다.



* h의 톡을 거의 다 씹고 있는 요즘의 상황도 이야기했다. 너무 힘드니까 놓게 되는 것 같다고. 선생님은 내가 상호 100의 관계를 강하게 원하다보니, 100이 되지 않는 관계는 그냥 0으로만 두는 것 같다고 했다. 그치만 세상에는 30인 관계도, 50인 관계도, 65.5인 관계도 존재한다고. 그 친구에게만 40으로 굴어도 된다고. 모든 관계가 100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 오히려 0인 관계를 유지하는것이 나에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 p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미운 짓을 해도 밉지가 않은데, 동기들은 밉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 의아하고 신기하다고 했더니, 그건 너무 당연하고 쉬운데요? 하셨다. P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잖아요, 하면서. 내가 P에게는 내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고, P도 마음 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 당연히 그에 대한 미운 마음은 생기지가 않는 거라고 했다. 반면 동기들에게는 내가 나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매번 온기를 유지하는게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거라고. 결국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내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의 근본적 해결책이다. 근데 그러기가 싫어요 선생님, 했더니 그것에 있어서도 정도를 조절해볼 수 있다고 했다. 모두에게 매분 매초 100의 나를 보일 필요 없다고.



* 2H에 대한 이유 모를 증오를 털어놓으면서, 어쩌면 S와의 관계에 대한 감정 때문에 그런 강한 감정이 드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더니 선생님이 심리학적으로 정확한 분석이라고 했다. 내가 그 관계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으니, 그런 유사한 관계에 대해서도 뿌리깊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거라고. 사실 S와 얽히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서 S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싶었는데, 동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아껴두고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유모를 분노로 괴로운 일을 줄이기 위해서도,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도 나와 내 관계를 더욱 열고 내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J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상담에서 용기를 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숨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ㅎㅎ.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