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939일차 - 상담일기 6 , acceptance

* 기본으로 주어지는 다섯차례의 상담이 끝나고, 이제 정말 개인적으로 시작하는 여섯번째 상담. 다섯번째 상담의 내용은 바로 기록하질 않아서 기억이 없다. 요즘의 기억은 너무나 쉽게 휘발되어버려서 허무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냥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팀장님과의 업무 협의가 버겁다는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이 ‘수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것. 상대방이 다른 제안을 했을 때 그것이 타당한지 살펴보고, 내가 생각했던 바를 살리면서도 상대방의 의견을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을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려는 태도 자체만으로도 조금 더 편안한 공기를 만들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이 그 다음주 내내 도움이 되었다.



* 2주만의 상담이었다. 팀에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그 전 주까지 묵은 모든 것을 정리해보려는 마음을 먹고 지냈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z와의 관계를 개선해보려는 노력이었고, 하나는 6개월을 묵혀놓았던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업무 자신감을 좀 가져보는 것. 그 중 관계 개선 파트는 일단은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서 슬펐고, 6개월 묵은 일은 어쩌다보니 점점 큰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업무자신감에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이 있었다(월요일의 TF 회의). 왜 그런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냐고 하셔서, z 같은 선배가 되긴 정말 싫고, 어쨌든 모범을 보여야하겠다고 생각하니 절로 그런 일들을 한번쯤 정리하고 가야겠단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Z를 싫어하는 마음이 어떻게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면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속마음과 너무 닮아있어서 그런 면에 대한 환멸같기도 하다고, 그래서 쉽게 z 같은 모습이 될 것만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너무도 단호히, ㅁㅁ씨는 절대 그런 선배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단언컨대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아무리 못해도 그렇게 비열한 사람이 되진 않을거라고 말씀해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다.




* 새로 바뀐 자리가 BK 앞자리인 것이 고통스러운지 확인하셨다. 지난주 기준으로는 그리 큰 고통은 아니었어서 그리 대답했다.



* 금요일의 breakdown과, 버거웠던 월요일 회의를 털어놓았다. 심장이 내려앉은듯 우울했던 금요일의 일은 조금 놀란 얼굴로 들으시긴 했지만, 차츰 좋아질 것이고 나에게 그렇게 해나갈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씀해주셨다.




* 월요일의 회의에 대한 이야기는 좀 길어졌는데.. 깊이 들어가다보니 내가 주눅들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사실 주눅이 들어 그런 것이 아니라, 싫은 상황 속에 얼어버린 순간이라는 분석에 다다랐다. 나에게 그런 코멘트를 한 국장님에 대해 무의식 중에 갖고 있던 무시(?)가 발동되기도 했고,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내 머릿속에 수용에 대한 빨간 불이 켜지면서 그냥 이 상황에 대응하고 싶ㅈ ㅣ않은 자아가 튀어나와 스탑을 외친 것 같다고. 사실 같은 이야기를 J 실장님이 했으면 선뜻 받아들였을 것이기에 기저의 생각을 단번에 캐치해내시는 게 신기했다. 되짚어보니 정말로, 주눅보다는 차단에 가까운 감정이었구나 싶다. 내가 평소에 이상적 그림을 그려놓고서, 그것을 벗어나면 차단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약간의 유연성과, 조금 더 적극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전할 때의 내가 ‘z 과장님이었다면 왜 B방식으로 구상했는지 슬쩍 이야기하면서 A방식도 좋겠다는 투의 말을 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답은 이미 알고 있고 그 상황에서 그리 행하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보기에 나는 이상주의자인데, 이 이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때때로 극단에 치닫는 마음을 갖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상주의자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믿는 이상이 너무 견고하다보니, 그것을 벗어나는 사람이나 현상에 대해서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 그러나 나의 이상이 완전할 수는 없으며, 내가 조금 유연한 태도를 갖는다고 해서 그 이상이 물러지거나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고 했다.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면서도 나의 이상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지난주의 신분증 사건이야 내가 실수를 한 것이니 얼마든지 주눅들 수 있을법한 상황이지만 이 상황의 경우에는 주눅들 일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분리해서 생각해야한다고 했다.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주어지면 그때는 정확히 나의 의사를 밝히되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보자고 다독여주셨다.




* 마치기 직전에 잠깐 시간이 남아서 싫은데도 꾹꾹 눌러 참으며 했던 일들을 살짝 되짚었다. 유년기의 경험을 물으셨는데, 딱히 기억나는게 없었고 발레와 태권도ㅋㅋ가 기억났다. 최근의 기억은.. 인턴 시절 기억과 교환학생 준비하던 휴학생 시절, 그리고 하나는 면접 다닐때. 그 때의 기억들은 잠깐 되짚는 중에도 금방 눈물로 차올라버린다. 개중에는 내가 선택해서 한 것임에도 유독 서럽고 슬프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정리되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엉키어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에게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