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1356일차 - 고장에 대한 기원

Bgm-콜드-터널

(2021.9.14)

- 나의 기능 중 어떤 것이 고장나버렸으면 하는 날이 있다. 너무 예민한 나의 눈치, 시도때도 없이 드는 열등감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왜 잠시 끄는 것 조차도 어려운지.



- 지난주부터 뇌리에 박혀서 나를 놓아주지 않는 문장이 있었다. ㄱ과장님은 야근 안하던데, 뭘 더 맡았나? 하는 말이 그렇게나 마음이 아팠더랬다. 어떻게 알고 그런 반가운 타이밍에 전화를 하신건지, 그날 저녁 실장님과 나눈 오랜만의 대화에 마음이 꽤 든든해져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월요일에 야근을 하다보니 ㅁㅎ이의 그 말이 또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자꾸 선배들이 나와 ㅁㅎ을 엮어 밥을 사주는 통에 나는 자꾸만 그 아이와, 미움 가득한 나의 마음과 마주앉아야만 한다. 미운 마음을 최대한 삼키고, 예민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굴려고 애써보는 점심시간. 살갑게 근황을 묻고 말갛게 웃어보이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지 나는 안다. 잠깐씩 스쳐가는 표정 사이로 그 아이도 내 생각을 엿봤겠지.





- 그냥 그런 감정을 느끼는 모든 회로가 고장났으면 싶다. 앞뒤가 다른 말을 들어도,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도, 그냥 휘휘 날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냥 지각조차 하지 못했다면 좋겠다.




- 그렇지만 내가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의 일들이 있고, 사람의 뒷면이 있고. 그렇기에 차별화되는 나만의 고유한 모습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낳을 좋은 인연들 또한 있을 것이고…



-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나의 예민함을 잘 어르고 달래가며 지내는게 당분간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