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1456일차 - 나를 살린 오늘의 말

211223의 상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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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 1
- 점심에 ㄱㄹ과장님을 만났다. 바보같이 웃지만 여린 마음을 가진 과장님. 과장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찡하게 만든 한마디가 있었다. 퇴사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었는데, 기준점 삼은 것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본 만큼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은 아이에게 ‘나는 나 하고픈대로 하고 살았어, 그러니 너도 너 하고픈걸 하며 살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말을 듣는데 눈물이 자꾸만 고이려는 것 같았다. 살아본만큼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결핍으로부터의 사랑이 아니라, 충만으로부터의 사랑 속에 자란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



오늘의 말 2
- 아침마다 메러디스를 만나고 있다. 최근에 본 에피소드들은 모두 이지 스티븐스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지가 숨겨둔 딸에게 골수 기증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와중 아이가 자신을 보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베일리는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의 이지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언젠가는 네 아이도 널 만나보고 싶어질거야, 하지만 그런 날이 오려면 우선 애가 살아있어야 돼.
- 일단 살아야 한다. 이런 날 저런 날이 오려면 일단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는 날도, 행복에 겨운 고백을 듣는 날도 내가 없으면 없다. 일단 살아내기 위한 힘이 그래서 필요하다. 내가 없는 채로 행복한 내가 된다는건 불가능한거야.




오늘의 말 3
- 오늘 상담에선 내내 회사 이야기를 했다. 자아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업무, 팀 분위기. 그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느끼는게 싫다고 말했다. 참을 수가 없어서 자꾸 화장실에 가서 숨죽여 울게 된다고 했다. 본연의 업무에서도 성과를 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쌓고, 구김없이 행복한 기운을 전파하고, 그런 와중에 운동도 잘 해내고 여행도 다니고 식물도 잘 키우고 사랑도 잘하는 그런 다재다능한 나에 대한 욕망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걸 깨닫는다.
- 선생님은 모든 것에 뛰어나고 싶은 마음을 잊어먹어야한다고 했다. 대체 누구를 위한 팔방미인이냐고. 그러게, 나 누구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거지 생각했다. 일도 인간관계도 사소한 공지글조차도 완벽하고싶어서 안달하는 마음이 나를 갉아먹는다면, 이 완벽주의는 대체 누구를 위한 거냐고. ‘누구’의 자리에 들어갈 이름들이 수두룩하게 떠올랐는데, 어떤 사람도 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위하고 싶은건 나뿐이잖아. 내가 아닌 누구도 그 ‘누구’의 자리에 치환해넣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 결핍으로 처박은 시간을 잊어내기가 어렵다. 몸에 새겨져있어서 쉽게 덮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에 뛰어나고 싶어했고, 그래야 가까스로 칭찬과 인정이라는걸 얻을 수 있었고, 그게 나를 스스로를 채찍하는 일에 중독되게 했고. 그게 아직까지도 나의 빈틈을 못참게 싫도록 만든다.
- 그런데 나는 이제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 마음 하나 안온하고 새로우면 된다. 그럴 수 있는 길을 한발짝씩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