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디스옥타비아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2021.2월

- 어쩌면 책 전체를 필사해야할지도 모를 책... 문장 하나하나가 맘에 쏙 들었다. 시간의 흐름과 반대로 쓰여있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신박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라니. 시간 순서대로 읽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작가의 말을 보고서 그 생각을 접었다. 시간을 반대로 거슬러가면, 우리를 옥죄던 많은 까닭과 까닭의 까닭은 그저 그냥 있었던 일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인과관계의 고리는 더이상 없다. 고통의 근원조차 옅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금 더 느슨한 형태의 영혼이 된다. 그리하여 해방되는 슬픔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 멋진 문장이 많아서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단 생각이 줄곧 들었다. 인생의 여러 시간을 보내며 알게된 슬픔과 고통에 대해 묘사한 부분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위로의 힘이 있었다. 슬픔과 고통을 겪은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로 쓰인 책. 언젠가 나의 존재가 한없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날, 하염없이 바다를 걷다 울고 싶은 날, 그런 날에 차분히 읽어내고 싶은 책. 마음이 추운 날 슬그머니 두른 채로 까무룩 잠들어버리고 싶은 보드라운 담요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