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1. 절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돈 쓰고 싶은 일이 생긴다. 계획에 없던 여행 뽐뿌가 들고 관심 없던 아이템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이게 다 마음이 허한 탓이다.


2. 기운 없이 들여보낸 어제, 억지로 손을 잡아끌어 집에 데려다 준 그제가 있었고. 아침 출근길은 그래도 웃으며 헤어졌지만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몰아치는 탈출 문의에 영 지친 마음이 되어버렸고. 그런 마음이 구에게까지 튀어나왔다. 그날 조금 속상했다고, 힘이 되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해 갑갑하기도 했다고. 구라고 답이 있을리가. 텍스트로 전달하려니 자꾸 더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3. 등대와 충전하듯 점심을 먹고나니 그제서야 구가 기운내어 해준 것들이 떠오른다. 퇴근 시간을 기다려주고, 졸음이 쏟아지는 밤에도 쭈그리고 앉아 기어코 데리러온다는 나를 기다리고,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먼저 말을 걸고 들어주고.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리로 돌아와 다시 대화를 이었다. 구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오전보다 한결 말랑해진 톡을 자꾸자꾸 보낸다. 등대 말마따나 역시 사랑은 생명체 같은 일. 물을 주고 해를 쬐고 숨이 트이도록 이파리를 닦아줘야 하는 섬세한 일. 길지않은 휴가지만 이번 연휴만큼은 구가 해를 넉넉히 쬐고 돌아오면 좋겠다.



4. 큰 벗과 잠시 오후 수다를 나누었다. 한 주 시작과 끝을 벗과 나누었네. 내가 갈 때마다 풀꽃차를 내어주는 벗. 티백이 빠지지 않도록 항상 티백 끝에 작은 테이프를 붙여주는게 벗만의 디테일이다. 견뎌내야 할 이유가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말하다보니 눈물이 찔끔 나왔고, 말하고보니 큰 벗의 결심을 탓하는 말처럼 들렸을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그 결심과 엮어 생각한 것은 아닌데.


5. 잊기 위해 적는 지금의 걱정 : 올여름 비가 많이 온다는데 괜찮을까 / 막다른 길에 닿은 것인가


6. 제목은 김소영 작가의 문장. 우리는 쉽게 패턴화된 결정으로 기울고, 절망이 언제나 훨씬 더 쉽다. 그걸 알고 나면, 종국에 어떤 것이 나를 더 살리는 길인지 알 수 있다. 더 번거로운 것, 더 가차없는 것, 그래서 우리를 걷게 만드는 것. 그쪽으로 기우는 연습을 해야한다. 웃는게 이기는거라구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치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