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1757일차 - 공들여 수습하고 싶지 않은 일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한 주. 사람들의 말에 치이고 위로받고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겨우겨우 집에 와서 내내 잠을 잤다. 어떤 날은 여덟시부터 곧장 침대로 기어들어가 동이 틀 때까지 내리 잤다. 잠을 자는 동안 눈물어린 일 절반 정도는 잊어버리고, 반쯤은 꿀꺽 삼켜버리고. 그러고 나서 다시 아침이 되면 출근길 오빠를 만나는 잠시동안 가벼운 기분이었다가, 그 후는 다시 어제 같은 하루의 반복과 변주.

• 노와 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가져간 안이었다. 나름대로 두세달, 아니 작년부터 족히 이야기 나누고 대안을 만든 안이었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말장난 끝에 파탄에 이르렀다. 나도 같은 입장의 동료인데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똑똑한 척 하면서 사실은 이기적이기만 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미웠다. 다르게 쓰여도 좋았을 말을 오로지 난도질을 하기 위해 내뱉는 것이 슬펐다. 노력하고 고심한 것들이 다 구겨져버리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덕분에 논의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어쩌면 원점보다도 더 못한 어느 지점.

• 국장님의 말 한마디

이 일에 대해 소화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수요일,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마주친 국장님이 건넨 말에 응어리진 눈물이 조금 녹았다.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존재감 없이 끼어 있었던 회의자리였을텐데, 구석 어느곳까지 알아차려준 사람이 있는 것이 감사했다.

• 멍청한 실수의 발견

하루 차이로 놓쳐버린 어떤 일을 발견했다. 한참 야근하고 열시를 갓 넘긴 시각에. 이미 벌점의 영역에 들어간 일이고, 다음 기한까지 수습하면 되는데 아.. 자꾸만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머리를 저어 잊어버리려고 해도 잘 안됐다. 위로가 됐던 건 팔 벌리고서 나를 기다리고 서있던 오빠의 모습뿐.

• 날선 선배의 모호한 대답

위의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다른 팀 선배의 도움이 필요했다. 원래도 후배들에게 날카롭기로 유명한 사람.. 말 걸지 않고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하는 도움이 있었다. 언뜻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듯 했으나 다른 업무가 많다며 데드라인의 데드라인에 맞추어 주겠다고 하는 그녀. 더 재촉할 수도,그렇다고 마음 넉넉히 기다릴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

• 고슴도치 일

회의록 정리, 함께 했다. **비 예산 설명 보고서, 같이 썼다. 하나는 못해도 70% 가량은 내가 작성했고, 하나는 수정안 여기저기를 손보았다. 팀장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보다. 나는 쏙 빼놓고 ㅇ과 ㅇ가 썼다고 말을 해서 속상했다. 중간버전 공유는 제가 드렸는데 저는 왜 빼세요.. 그 와중에 후배 ㅇ은 본인에게 잘 맞는 업무를 적정량으로 맡았는지, 일하는 틈틈이 놀러다니는 것이 보인다. 오늘은 워크숍 계획을 짜다 텐션이 높아졌는지, 무척이나 신난 상태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기운이 빠졌다. 내가 맡은 일은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 같은데. 조금만 잘못 쥐어도 크게 다칠 것만 같고, 조금 알 것 같다가도 금세 모르겠던데.. 그러나 이것이 욕심어린 유치한 마음인걸 아니까 스스로 무척이나 창피하다.

• 휴직과 퇴사

출산 임박 직원들의 상담이 어쩌다보니 나의 일로 굳어졌다. 이번주에는 인사 관련 업무도 조금 연구하게 되었다. 휴직과 퇴사를 앞둔 사람들이 와리가리한다. 다른 사람들이 좀 더 스마트하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컨설팅해주다보면 물음표가 자꾸 생겨난다. 나는?

• 심과 송의 발작

자신의 사소한 손해 하나에도 미친듯이 발작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이유 없는 반려도 아니었고, 근거를 갖추어 한 일이었다.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해도 그 이상의 ‘손해’가 생길 일이었다. 물론 떳떳하게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손해였다. 그냥 고까웠던 것이다. 자신이 이런 사소한 것마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그 상황이. 스스로 떳떳하지도 못하면서, 저렇게나 억울할 수도 있구나.. 알게 되었다. 언성을 높이며 지랄을 해준 덕분에 아침부터 심장이 벌렁거렸다. 발표 날에조차도 내 심장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오늘 송의 발작을 들으면서는 정말 심장이 자꾸 아렸다. 없던 정도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발작을 해놓고선 오후 내내 술자리를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강약약강만 하는 벌레 같은 인간. 좀 배워라 으휴.

• 인턴의 부재

인턴이 퇴사했다. 이 일을 하기가 싫다고 했다. 갑자기 급여를 다시 계산해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 친구가 나간 후로 그의 업무는 남은 직원들의 몫이 되었다. 그마저도 몇몇 차장님 부장님은 손조차 대지 않고, 그냥 짬순으로다. 쌓여있는 우편물들을 처리하면서 조금은 평안해지고 조금은 심란한 마음이 되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기약이 없어서.


어느날 퇴근 길에는 기어코 눈물이 나서 지하철에서 엉엉 울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니까 오빠가 잠자코 손으로 닦아주었다. 울다보니 눈 앞에 보이는 눈동자의 숫자가 확 늘어나 있었다. 오빠한테 속삭였다. “왜 사람들이 다 내쪽을 보고 서있지..?” 오빠가 말했다. “이제 네쪽 출입문이 열리는 역이야.” 웃음이 터져서 울다말고 웃었다. “그렇게 서서 울면 꼭 내가 울린 것 같잖아 바보야. 곤란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에 또 웃음이 팍 터졌다. “사람들한테 해명해줄까? (박수치며) 이 사람이 울린 거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마세요!!”. 조개구이집 데이트 이후로 내가 박수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아이같이 웃는 오빠인데, 내 말에 오빠가 또 아이처럼 웃었다. 정말이지 이 퇴근길이 없었다면 나의 하루끝은 모래성 같이 허물어졌을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겨우 집. 무엇이든 먹고 몇시든 침대로 숨어야지. 이불 아래 숨어서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