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1626일차 - 사는 이야기

2022.6.11.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는 제각각의 일터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아이들. 모이고 보니 업종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 조합이었다. 상속 전문 변호사, M&A 전문 회계사, 대기업 인사 담당자, 국립박물관 소속 학예연구사. 모두 다른 모양의 삶을 사는 아이들이 모인 탓에, 오가는 이야기의 주제도, 결도 다양했다.

그 아이들의 다이나믹한 하루를 듣고 있자니, 내가 데일리로 쳐내는 업무와 에피소드들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큼직한 투자증권회사에서 온갖 소송을 다 겪으며 일하고 있는 홍오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마다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 어쩜 그렇게 주제가 큼직하고 다채로운지. 당장 어제만 해도 나는 내가 전화해 안내한 내용을 두고서 인턴을 시켜 안내했다고 무례하다 주장하는 황당한 구설에 스트레스 받아했는데.

이런 소시민적 삶이 나쁘다 할 수는 없겠으나, 어딘지 초라해보이는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신기한 이야기들을 놀란 눈으로 듣는 시골쥐가 된 기분. 여가 시간에는 뭘 하냐는 물음에 달리 말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그럴 때 나는 그냥 운동을 이야기한다.) 필라테스도 하고, 가끔 술도 먹고~! 하며 가볍게 풀었는데, 돌아가며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는 없는 눈치여서 조금 민망했다. 공부한다는 소리는 더더욱 못하겠더라. 안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왜인지 그것조차 구차한 느낌이 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런 취급을 할 얕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생각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본다. 모두의 하루하루에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면 스스로가 지질하게 느껴지는 날도, 다니는 직장이 참을 수 없이 관두고 싶은 날도 있겠지. 내가 만난 이 하루치의 삶은 지극히 작은 한 조각일 뿐이니까 그것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여있는지조차 모른채로 지내다가 처음으로 큰 바다를 본 느낌이다. 너무 생경해 시리고 막막한 마음이 들 지경의 그런 풍경. 집에 오는 길 내내 갑자기 공부가 하고싶었다. 내일은 아끼는 카페에 가서 내 삶의 핸들을 다시 잡아보아야지. 나의 사는 이야기는 어쨌든 내가 택하는 것이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