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의 상담일기 - 그저 다 찌동이라구

 

데일리로그인지 인생수습 꼭지인지 모르겠다. 둘 사이의 어떤 것.

• 마지막 상담이 끝났다. 자그마치 2년을 이어온 상담이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몰라. 20년 초여름 시작하여 22년 봄의 초입에 마치게 되었으니, 상담과 함께 보낸 계절이 자그마치 두 사이클이다.

 

• 한번에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는 건 정말로 드물고 귀한 일이라는 걸 안다. 상담을 시도했던 주변의 많은 이들이 잘 맞는 선생님을 찾기 위해 몇번씩 리셋버튼을 누르는걸 보았으니까. 그 귀한 인연 속에서 한 챕터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2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비율을 따져보자면, 아마도 60%는 회사와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40%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기억나는 몇가지 장면은, 대학 시절 마음에 맺혔던 일을 처음으로 이야기하던 날 선생님이 함께 눈물을 흘리신 것.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이야기가 슬퍼서가 아니라, 내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려주는 선생님 모습이 떠올라서. 내가 슬퍼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그 안도감이 내게는 무척이나 컸다. 여태껏 나는 그 일로 그토록 마음 아파 하는 내 자신에게 인색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선생님이 함께 눈물 흘리며 다독여준 순간 그동안 박하게 굴었던 마음이 그냥 다 용해되는 것만 같았다.
• 또 다른 장면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왜 그랬지 싶은 실수를 하고서 당사자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망설이던 때였고,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이번 관계에서만큼은 다른 선택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부드럽게 권해주셨다. 패턴을 깨는 일이었고, 패턴은 둘째 치더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너무너무 어려웠는데, 그냥 용기를 내서 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난 뒤 상담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정말 진심으로 잘했다고 감탄하셨다. 내가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고. 그 정도로 단단해졌다고. 스스로 듬뿍 칭찬해주라고. 그날 나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냥 그 과정 모두가 대견했다. 선생님한테 고민 되는 지점을 공유하고, 방법을 찾고, 알맞은 방식을 찾아 용기있게 행한 그 과정 전체가 좋았다.

 

• 지난 2년간 나는 1.나의 안을 들여다보고, 2.연고를 발라야하는지, 용기 있는 행동을 해야하는 때인지를 살피고, 3.스스로를 보듬어주는, 동그라미처럼 생긴 일을 여러차례 반복하여 경험했다. 크고 작은 치유의 동그라미들이 쌓이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닥쳐와도 전처럼 고이고이 잠겨있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나는 무척이나 미워했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살리고 있다. 차곡차곡 1~3의 동그라미를 그려온 과거의 내가 현재와 미래의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지지해주는 느낌이다. 상담 첫날 내가 토로했던 감정은 무료함, 무기력감, 우울감이었는데, 마지막 상담에서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인정, 행복의 재발견,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한 여유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를 살리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완벽한 길이 아니라 현명한 길을 찾거나, 없다면 그런 길을 만들어 갈 나 자신에 대한 신뢰. 내 안에 그런 신뢰가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 2020년의 슬픔은 이제 없다. 2021년의 지친 마음도 이제 없다. 그런 순간, 마음들은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이지만 또 언제든 갈 것이다. 조금 휘청이더라도, 결국 다시 힘내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동그라미를 그릴 줄 아니까. 어쩌다 이음새가 딱 맞는 동그라미를 그리면 그건 특별히 럭키한 날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동그라미가 동그라미지 뭐야.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이다. (feat. 오래도록 좋아해온 글 중 하나인 김창완 아저씨의 47개 동그라미. 정말이지 21세기의 명언이다.) 언젠가 힘든 마음으로 오늘의 일기를 들춰보고 있을 미래의 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찌동을 잊지 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