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들이 첫번째로 버린 것

이것은 글로 쓰는 비포 애프터

 

사람은 한 생애 동안 도합 몇 켤레의 신발을 신을까. 언젠가 누군가 지구에 사는 모든 인구의 평균을 낸다면 이 집의 신발이 평균치를 거뜬히 두어 켤레 정도는 올려버릴 것이다. 삼남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단연코 현관이었다. 집을 들어서기 위해 가장 먼저 지나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집안의 공간 중 가장 작은 면적이었기 때문이다. 넓은 곳부터, 큼지막한 것부터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도 부러 설득하지 않았지만, 이 작은 시작점을 지나치고서는 바닥까지 비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데에 셋 모두가 동의했다. (비전문가 셋의 눈에 가장 만만한 곳이었다는 것은 비밀로 해두자.)

현관은 이렇게 생겼다. 문을 열면 오른쪽에 신발장이 있고, 그 위로 가로로 길게 놓인 붙박이 거울과 상부장이 있다. 장은 모두 옅은 크림색. 거울 앞에는 네 살짜리가 “꽥꽥”을 외치게 하는 작은 오리 인형이 놓였고, 말린 꽃잎이 올라간 향초가 그 옆을 차지한다. 신발장에는 5인분의 신발이 가득 들어차 있다. 삼남매와 수정, 재헌이 매일같이 해내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신발장만 엿보아도 알 수 있다.

재헌은 같은 직장을 30년을 넘게 다녔다. 그의 출근복은 언제나 정장이었다. 색이 다채로운 수정의 옷장과 달리 재헌의 옷장은 채도만 다른 정장 자켓과 셔츠가 즐비하다. 그랬던 탓에 신발장의 신발 중 재헌의 신발은 삼분의 이가 정장 구두이다. 다섯 켤레 남짓 되는 운동화는 대부분 퇴직 이후에야 들인 것이다. 골프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흔적이다.

수정도 회사용 신발과 일상용 신발이 따로 있다. 색만으로도 손쉽게 구별할 수 있다. 회사에 갈 때는 언제나, 검은 신발을 신는다. 밝은색의 신발을 신는 것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MZ들은 회사에 갈 때 가장 누추한 옷을 입는다던데, 수정은 어쩌면 앞서 온 MZ일지도 모른다.

삼남매의 신발은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행마다 사고 잊은 신발들이다. 그 집의 여자들은 모두 발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의 신발이 서로 다른 사이즈로 놓일 때도 있다. 버켄스탁이 그렇고, 나이키가 그렇다. 삼남매의 정리 결의가 뒤늦은 탓에 20년 주기라는 패션 유행이 더 앞서 돌아와 버렸다. 큰 자식은 15년 전 뉴욕의 편집샵에서 사 왔던 나이키 하이탑이 아직도 유물처럼 신발장 한구석에 놓여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 것을 샀다는 것조차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수정이 외출 중인 틈을 타 정리를 시작했다. 예식장에 갈 때 신을 구두 몇 가지를 빼두고, 예스러운 디자인의 신발은 모두 버렸다. 샌들과 슬리퍼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을 빼고는 모두 버렸다. 운동화는 등산용, 러닝과 산책용 두 가지만 남기고 버렸다. 아, 수정의 검은 운동화는 빼고. 유행에 따라 사 모았던 신발도 싹 비웠다. 퇴직 이후로 재헌이 더 이상 전만큼 쓰지 않는 종류별 구두약도 가장 최근에 산 한 가지만 남기고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대용량 쓰레기봉투 두 개가 거뜬히 찼다.

일단 시작점은 지났다. 시작점으로 ‘여겼던’ 것이 정말로 시작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