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전문성에 대한 건

 

야심차게 시작하긴 했지만, 그들은 정리 전문가가 아니다. 어느 할 일 없는 무료한 날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을 본 것, 그리고 연예인의 집을 정리해주는 정리 예능을 클립 영상으로 본 것이 그들의 머릿속 ‘정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세 자식이 세운 첫 번째 원칙이자 마지막 원칙은 ‘”도대체, 왜”를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유일무이한 원칙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애당초 잔소리꾼에 불과했다. “엄마 이건 도대체 언제 치울 거야?” “아빠 이 옷 입긴 입어? 왜 안 버려?“

집에 들러도 잠시만 머물 뿐이었으니 너저분한 구석이 유독 크게 눈에 들어왔고, 눈에 들어왔으니 던진 말이었다. 내내 5인분의 살림을 돌봐오다 덩그러니 남겨진 둘에게 그런 말이 어떤 딱지를 남기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그때 그 자식들의 눈에는 둘이 답답해 보일 뿐이었다.

”응.. 버릴거야. 그건 아직 입는 거야.” 이런저런 물음에 수정과 재헌은 어쩐지 어물쩡한 대답만 내놓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대답 소리가 휘청였다.

“마음에 짐이 많으니까 집도 그런 거야.” 큰 자식이 삼 남매 단톡방에 공유한 영상 하나가 전환점이 되었다. 부모에게 잔소리만 하던 자식들이 각성하고 온 집안을 뒤엎고 다용도실을 리모델링하는 영상이었다. 다용도실에 가득 차 있었던 건 담근 지 오래된 각종 장아찌, 서리태, 현미 같은 곡류, 코스트코에서 대용량으로 사 와 쟁여놓은 세탁 세제. 모두 가족의 살림을 돌보는 데 쓰이는 물건이었다. 각각 다른 세 개의 핸드폰에서 같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남의 집 치우는 영상을 하염없이 봤다. 새로 산 밀폐용기에 서리태와 현미를 분리해 담으며 유튜버가 말했다. 독립해 나간 자식들이 부모에게 잔소리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막내자식이 스물여섯이니, 둘이 셋이 되고, 넷이 되고, 지금의 다섯이 된 것은 꼭 26년째이다. 잔소리꾼이 된 것은 5년째인가, 7년째인가. 어쩌면 26년 째인가. 그사이 수정과 재헌의 마음속에 어떤 파동이 있었을지 자식들은 모른다. 자식들이 떨어져 나간 여느 부모들처럼 마음속에 허전함, 무방비함, 그런 것들이 쌓였었나보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각자만큼의 살림을 해 본 입장이 되고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가 무너짐과 추스름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큰 자식과 막내자식이 살아내는 일 인분의 삶과 작은 자식이 돌보는 삼 인분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같았다. 오 인분의 살림은 더하지 않았을까. 더 자주 무너지고 더 자주 추슬러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셋은 ‘도대체, 왜’를 묻지 않기로 했다.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셋은 마음속에 넉넉한 길을 트기로 했다.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가 연신 강조한 것은 이것 하나다. 설레지 않는 것은 버리라고. 물건을 보았을 때 설렘이 있는지를 돌이켜보고, 다른 형태로-예컨대 글이나 영상 같은 기록으로-그 설렘을 간직할 수 있다면 부러 이고 지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애착은 애착이고, 물건은 물건이니까.

삼 남매의 눈에 비친 집안의 것들은… 설렘이 없었다. 수정과 재헌의 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느껴졌다. 자식들이 둘의 앞에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떠올렸을 때 설레는 마음이 드는 물건을 이 종이에 모두 쓰라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정리하겠다고. 우리가 남기고 간 묵은 것들을 걷어내고, 당신에게 아늑함을 주는 것만 이 집에 남기자고. 그렇게도 한번 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