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서 얻을 수 있는 것

https://youtu.be/lK-wTZDrniw?si=_JhYzFm3Z6-A15R8

좋았던 대담

 

• 호오가 분명치 않고 다양한 것을 가끔 깊게, 대체로 얕게 즐기는 나의 취향은 자주 물음표를 달고 다녔다. 타인이 나에 대해 갖는 물음표이기도 했고, 얕고 넓은 관심이 나의 한계인지 되묻느라 단 물음표이기도 했다. 신념이 확고하고 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심지어 스스로가 무색무취한 존재라고까지 느꼈다. 이건 싫어, 저건 좋아. 재빨리 호오를 판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것도 싫지 않고 저것도 좋은 때가 더 많았으니까. 흐릿한 나의 취향이 나라는 사람까지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 제주 여행에서도 비슷한 물음이 있었다. 이전에 가보았던 식당을 가보지 않은 두 선배를 위해 기꺼이 한번 더 가려하는 나를 두고, 선배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좋은 것 맞냐고. 나로서는 굳이 특정한 곳을 고집하고 싶은 이슈가 아니기도 했고(한끼를 어떻게 때울까에 대한 결정일 뿐 가치관이 달린 문제거나 생사가 달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맛있었던 식당을 두 선배에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나의 좋았던 순간을 아끼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까. 선배는 나의 선택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내가 나를 희생해가며 배려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코 그렇지 않았기에,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달리는 동안 때아닌 해명을 해야했다.
• 유튜브 알고리즘 위를 뒹굴거리다가, 나의 물음표 조각들을 하나의 꼬챙이로 꿰어서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문장을 만났다. 확고한 취향이 선호받는 세상에 대해 이동진의 코멘트는 이렇다. 열 개 중에 하나만을 즐기는 사람과, 열 개 중에 여덟 개를 즐길 수 있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겠느냐고. 발끝부터 정수리 끝까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내 찾아다니던 문장을 만난 느낌. 어떤 말은 타인으로부터 확인할 때에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무언가의 가치를 쉽게 재단하고 배제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이고 위험한 접근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 지난달 읽은 요조의 책에서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가끔은 어떤 문장들이 중력의 작용을 받는 것처럼 나에게 온다.

  이 세상에는 이런 이중부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 어떤 상태가 있다는 말을 하며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예컨대 누군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배우자를 사랑하는가: 당신은 정직함과 정확함이라는 미덕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이런 이중부정의 형식으로밖에는 답할 수가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이 이중부정을 긍정으로 이해해도 되느냐고 재차 물어보면 당신은 '뭐. 그런 셈이죠'라고 대꾸하고 말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어떤 거짓이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서 마음이 스산해질지도 모릅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인 것 같다'는 말도 정직함과 정확함이라는 미덕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너무 빈번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빈번하게 애매하기 때문이다. 좋으면 좋고 아니면 아닌 것 사이에서 우리는 더 많이 살아가고 있다. 그 애매모호한 지점을 우리는 그저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요조, <만지고 싶은 기분>

• 애매한 것이 정말로 애매하기만 한 것일까? 그것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