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만들 한 줄 만큼의 내일 - 이슬아,가녀장의 시대X정혜윤,아무튼 메모

이슬아의 북토크를 다녀왔다. <가녀장의 시대>, 그가 낸 새 책의 이름이다. 이미 일간 이슬아를 통해서도 읽었기 때문에 출판사 사장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익숙하다. 그런 하루하루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소설’로 엮어냈다. 소설 속에서 그의 출판사는 조금 더 가능해진다. 소설적으로 허용되는 것들이 더욱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이어야만 던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그리했다고 한다. 문득 그가 그의 시작으로부터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져왔는지가 체감되었다. 확장되어 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쁘고 닮고 싶고 덩달아 확장되고 싶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독립하여 사는 삶? 삼남매 첫째로서의 경험? 어떤 익숙한 것은 너무나 삶이 되어있어서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최종면접에서 물만 먹으며 2년여를 보내고, 언론고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자마자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까스로 내 자리 하나를 찾았다 싶었다. 비로소 여기저기 너덜해진 생이 수습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첫 출근한 날부터 인생수습 일기를 썼다. 회사에서 크고 작은 배움이 생길 때마다 메모한 것이 어느새 (공개 가능한 것만) 40개는 쌓였다. 원래는 한맺힌 마음을 담아 취업 시장에 대한 디테일한 폭로를 하려던 마음도 있었는데, 그건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오늘의 나로 살기만도 벅차서 어제의 나를 회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인생수습 일기는 처음 생긴 ‘내 회사’에서 팀장님으로부터 배운 귀중한 것들, 첫 후배를 받으며 느꼈던 기대와 좌절과 책임감, 내부직원과 대화하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으로 채워져 나가고 있다. 오늘의 나로부터 한발짝 더 확장되어보려 노력한 흔적들이다.

2013년부터 블로그 한 켠에 걸어둔 내 독서노트의 이름은 <기록해야 남는다_오늘의 밑줄>이다. 2022년에 새로 만든 독서노트의 제목은 <You are what you read>.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엇이 ‘나’를 만드는가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오늘 읽은 문장과 오늘 적은 한 줄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가끔은 과수가 적어둔 문장이 현수가 쓸 문장을 만나 영향을 준다.(가장 최근의 독서 경험이 그랬다.) 그럴 때는 묻어두었던 주식이 상한가를 찍는 걸 볼 때만큼 믿음직하다.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레슬리 컨 - https://danslair.tistory.com/m/356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레슬리 컨

너무 이상만을 좇는 사람은 현생이 힘들다고,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버거울만큼 들어 현실이 지긋지긋할 때마다 생각했다. 나의 기대를 줄이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아무튼, 메모>의 정혜윤은 메모 안팎에서 너무나 이상을 닮으며 살고 있다. 조금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를 줄이지 않고 오늘의 지긋지긋한 삶에서 연료를 얻으면서. 충격적으로 좋았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익숙하여 잘 아는 것, 그래서 더 잊기 쉬운 것을 이렇게나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꺼내어둔 것도 좋았다. 그의 생각 한귀퉁이를 훔쳐 읽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이 책을 계기로 뭉칠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그 모든 단어와 마음이 뭉쳐져 또 한 줄만큼 나의 내일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