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 헤어질 결심

 

🍿비가 부스러지듯 오는 수요일, 명동에서

• 애플워치의 성공적인 PPL. (ㅋㅋ)
• 마지막까지 헤어질 결심을 유보한 사람은 해준 혼자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가장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도 역시 그.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서래가 금을 그어 열어주어 해준은 금세 패턴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서래는 영영 알 수 없을 미결의 패턴으로 남는다.
•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온 죽음의 방식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밀물이 들어와 구덩이를 채우고, 파도가 다시 바다로 빠져나가며 모래로 구덩이를 한번 더 채우고. 차오르는 죽음이잖아. 영화 속에 등장한 그 어떤 죽음보다도 우아하다고 느꼈다. 구더기나 파리에 의해 갉아먹히지도, 흩어져 뿌려지지도, 떨어져 뭉개지지도 않는 단일한 죽음의 방식.
• 탕웨이의 연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이포 시장에서 서로를 마주치고서, 호신과 정안의 의미없는 대화가 흐르는 사이 둘만의 눈 대화를 나누는 장면. 왜 운동화를 신지 않았어요, 눈으로 묻는 장면. 영화 전반적으로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평을 보고 갔는데, 나는 너무 잘 들렸다. 간혹 잘 안 들리는 부분이 있어도 배로 귀 기울여 듣도록 하는 의도적인 장치처럼 느껴졌다.
• 심문을 하며 고급진 초밥을 나눠먹고, 늘 함께 해온 것 같은 움직임으로 먹은 흔적을 정리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치약을 짜주는 장면까지. 호흡을 같이 보태는 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듯 했다. 물론 해군식 숙면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 해준은 자꾸만 인공적인 것에 의존한다. 시야도, 호흡마저도 인공눈물과 인공 호흡기에 의존해야만 한다. 밸런스가 없는, 고장난 그의 상태를 드러내는 물건으로 보였다.
• 좋았던 것들 : 서래 집 벽지, 서래의 공책 표지, 서래가 입은 청록색 드레스, 위는 11개 아래는 6개의 주머니가 있는 해준의 맞춤 옷. 서래 집 벽지는 산 같은 형상이 파도를 이루는 무늬다. 아니다, 그 반대인가. 물결이 산을 이루는 무늬일수도 있겠다.
• 주말이나마 함께 몇년을 지내온 아내는 여러번 더듬어야만 알아내는 해준의 주머니 속 사정을, 서래는 단번에 헤아려 낸다. 여기는 립밤, 여기는 민트. 그 몸짓마저 우아하여 홀린듯이 보았다.
• 무너지고 깨지고 싶지 않아 안개속으로 숨은 남자와 그 안개 속을 헤치고 들어가는 여자. 파트1은 해준의 사랑을, 파트2는 서래의 사랑을 그린다고 느꼈다. 극 중에선 시계가 자주 등장하는데, 해준과 서래가 서로의 사랑의 말을 되짚는 장치도 시계, 사건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깨진 시계이다. 사랑이 죽은 이들은 모두 아날로그 시계를 하고 있고(깨지고 멈춘 시계), 사랑에 잠긴 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녹음을 덧입힐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하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더군다나 산편에서는 해준이 스마트워치를, 바다편에서는 서래가 스마트워치를 하고 있다. 해준은 바다편에서는 아날로그 시계를 사용.) 그래서 다시 한 번, 애플워치의 성공적인 ppl 축하드립니다..
• 홍산오는 대체 왜 등장한 인간인가.. 영화 속에서 필연이 아닌 캐릭터는 없을 터인데 대체 무슨 존재인지 쉬이 잡히지 않아서 집에 오는 길 내내 계속 곱씹었다. 당초 박찬욱은 영화를 두 파트로 나누어 제작하려고 했다고 한다. 파트1:산 / 파트2:바다를 테마로. 그러나 관객이 느낄 부담을 고려하여 한데 버무렸다고 한다. 파트 1 산에서 파트 2 바다로 넘어가는 중간에 홍산오가 있다는 걸 미루어보건대, 홍산오는 해준이 죽도록 쫓고 싶은 이상향이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사랑에 기꺼이 잠긴 사람의 모습 아닐까. 둘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여자들은 왜 그런 남자와 자는 겁니까-의 물음) 해준은 결코 산오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쫓을 뿐. 그리고 놓칠 뿐. 해준은 산오를 허망하게 보내고, 이포로 숨어든다.
• 연출이 기가 막혔다. 영상 기법은 학부 시절 전공교양에서 접한게 전부지만, 세련되고 개운하고 우아한 걸 모두 해내는 영상미가 있었다. 공작새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우아한 청록의 빛을 펼쳐 보이는.
• 싫었던 것 : 서래가 폭력에 노출되는 장면이 굳이 그 정도로 필요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장면을 안 쓸 수는 없는 것인가. 믿음직한 남자가 지켜주는 느낌이라는 대사도 별로였다. 어느 미더운 남자가 망원경으로 몰래 살피며 잠복하나.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관람 후기, 주관적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