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 계절의 변화를 따라 꼭 봐주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밤편지는 풀벌레 우는 초여름밤에 들어야 제맛이고, 라라랜드는 봄가을 환절기에, 구의 증명은 한겨울에. 같은 이치로 내 이름은 김삼순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틈에 봐야 제맛. 처음 봤을 때는 중학생이었는데, 20대의 눈으로 한번 더 보고, 서른살이 된 해에 한 번 더 보고, 이제 서른둘의 눈으로 다시 본다.

 

• 서울 한복판에서 일하는 새끼 인사담당자가 되고나니 보이는 장면들은 이런 것들. 삼순의 급여일은 매월 25일이고, 1달간의 수습 기간을 가진 후 정식 채용하는 것으로 협의했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ㅋㅋ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달만에 연봉이 10%, 급기야 나중에는 20% 인상되었고.
• 드라마의 배경으로 종로구와 중구가 많이 나오는 것도 눈에 띄었다. 도망칠 곳이 필요할 때마다 점심장소로 찾는 부암동 주민센터 앞 골목길이 삼순이 집 골목길로 나와서 삼순이가 귀가할 때마다 나도 왜인지 귀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뭇잎스시가 있는 자리에는 저런게 있었구나, 저기는 지금 스코프가 있는데! 하면서 봤다. 심지어 제사를 지내러 가는 장소는 진관사!
• 드라마 ost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지선과 알렉스의 목소리가 깔릴 때마다 삼순의 먹먹한 마음 상태가 나에게 에어드랍으로 날아오는 것 같다. my funny valentine도 깨알같이 나오고, 오버더레인보우,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도 나오고.

 

• 극 중 진헌도 다리가 안좋아서, 걷다 말고 멈칫하거나, 쉬어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구를 떠올렸다. 아픔을 안고 있는 모습도, 그럴 때마다 예민해지는 성미도, 어느 때든 깔끔히 씻은 모습인 것도, 문득 한없이 다정해지는 얼굴도 그를 닮았다.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 것도, 나를 볼 때마다 씻은 듯이 웃는 것도. 그래서 더 훌훌 한꺼번에 정주행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진헌 삼순도 씨ㅆ...
•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하는 장면이 워낙 유명하지만, 나의 최애 장면은 삼순이 공항에 앉아 진헌에게 아빠 이야기를 음성메시지로 남기는 장면. 분명 삼순에게도 무척이나 고된 하루였을텐데, 서럽고 지치는 하루 끝이었을텐데, 그럼에도 진헌의 형 얘기 해줘서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 더 와닿았다. 사랑으로 채워진 마음이라 서러운 마음보다도 고마운 마음이 더 앞서 들었겠지. 그 순간의 삼순은 정말 한치의 주저함도 없어서, 그게 좋았다.

 

• 희진이는 울 일이 너무 많고, 울 때마다 나도 함께 울고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딛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모습이 좋았다. 진헌과 맺어졌다면 싱거웠을테다.
• 삼순이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마다 이른 아침부터 주방에 선다. 나도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아침 일찍 움직이는 버릇이 있어 공감이 되었다. (내일도 빨리 출근할 예정..) 가서 조용히 하나씩 할 일을 해치워야지. 아침 고요 속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될 쯤 한숨 돌리며 갖는 커피타임.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하니까 포스팅은 여기에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