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 - 평일도 인생이니까(2020.4월의 책)

✍🏻처음 읽은 때는 2020년 총선 투표일을 앞둔 어느 저녁. 5시 땡 퇴근하자마자 단짝 선배와 평양냉면에 소주 한잔을 마친 상태였고, 다음날은 투표 말고는 할 일이 없었고, 여유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었다. 일단 책 표지에 적힌 문장부터가 마음에 박혔단 말이지.

마침 주말만을 기다리면서 5/7의 인생을 흥청망청 괴로워하며 흘려보내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였다. 절반쯤 읽고 덮어두었다, 다음날 낮 햇살을 맞으며 카페 바 자리에서 나머지를 읽었다. 공감되는 구절이 많아 밑줄도 한가득이다. 이때는 여행에 대한 부분이 크게 와닿아서, 포르투갈 여행 기억을 떠올리며 일기도 썼다.

 

처음 읽은 해에 썼던 일기. 포스팅도 했다.

(20.5.31)포르투갈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것

✍🏻그 뒤에도 이상하게 호캉스를 가거나 집에 내려가는 기차에 탈 때마다 이 책 한 귀퉁이 한 귀퉁이를 꺼내 읽게 되었다. 티타임에 곁들이는 마들렌 같이, 그런 문장들이 따라 붙어야만 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나보다.

 

✍🏻처음 읽은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다시 읽는 지금은 2022년. 주로 출근 시간에 책을 읽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꼭 뽀송한 햇살을 맞고 있을 때 읽어야 한다. 잘 널어져 뽀송하게 말라가는 빨래 같은 기분으로 읽어야 책의 맛이 극대화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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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들은 영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거겠죠. 하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되고 싶어하니까 문제인 거예요. 성공한 누군가를 동경하면서요.”

 

•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편지를 써서 그가 벗어둔 외투 앞주머니에 넣어 둔 적이 있다.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어도 된다고. 우리는 아직 어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을 테니 이것을 실패라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무엇보다 그 일이 너를 갉아먹게 두지 말자고. 세상에 그 정도의 일은 없는거라고. 출근길, 강은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 2020.4.15일의 내가 밑줄 그어둔 문장. 다시 읽어도 좋다.

 

• 이경미 감독의 책 <잘돼가? 무엇이든>엔 이런 문장도 나온다. 나는 이 말에도 동그라미를 쳐 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에 대해 가져야 하는 유일한 태도가 아닌가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든 아니든, 그 일이 나를 정말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상에 나를 망치는데도 버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건 결코 없으니까. 일을 하며 그 정도까지 불행해진다면 그렇게 얻은 성취감이나 돈으로 아무리 퉁을 쳐 봐야 퉁이 안 될테니까. - 내가 좇고 있는 목표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빨리 그만두겠다, 고 수시로 다짐한다. <잘돼가? 무엇이든> 중.
  • 2021.4.24의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좋아했었던 것이라도, 나를 망치고 있는데도 버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 정말로.

 

• 일희일비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나는 요즘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그런 내가 바보 같고, 우울해하는동안 지나가는 오늘 치의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렇다. 확실히 예전엔 없던 감각이 생겼다.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그렇다고 우울했던 기분이 금세 밝아지거나 없던 기운이 마구 샘솟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 고침 정도는 된다. ‘정신 차려, 울상을 하고 지내 봤자 이건 네 하루야'하고. 나는 손흥민도 김연아도 아니지만, 인생 역시 그런게 아니니까. 이번 삶에서, 눈앞의 일상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를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런 게 존재한다면.
  • 2020.4.15 오후 16:31의 내가 밑줄 친 문장. 아마 이북리더기에 줄을 거듭 그을 수 있었다면 2021년에도, 22년에도 나는 여기에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2021년의 나를 가장 많이 스쳐간 생각도 마찬가지로 이것이었다.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감각. 이렇게 앓고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마음 하나라도 더 표현하고, 귀한 경험 좋은 말 하나라도 더 나에게 대접하고 싶다, 하는 마음. 목요 상담을 하면서 돋아난 감각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대가 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가꾸면서 크게 돋아난 감각이기도 해서 소중한 문장.

 

•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리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 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 있는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