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이도우(2022.4월)

 

✍🏻독서 기간 : 22.4.25~30

✍🏻그 말 그대로야, 항상 너한테는. 이 문장에 꽂혀서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줄곧 장바구니에 넣어만 뒀다가, 사랑과 외로움이 동시에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던 날에 꺼내 읽었다. 따끈따끈 방금 구운 군고구마 같은 책. 허기를 달래주는 은은한 단맛의 책.

✍🏻은섭이 해원에게 건네주는 말들이 구가 나에게 건네는 말들과 닮아있어서, 우리 사이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은섭과 해원이 이어지는 결말이라 좋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알고 싶었던 결말이라 그랬나보다. 책을 알기 전부터도 오두막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좋았는데, 읽고 나니 더 더 좋아졌다.

✍🏻중간에 독립책방을 꾸려나가는 파트는 왜인지 싱거운 느낌이 들어 대충 읽어 넘겼다.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닌데, 싱거웠다.

✍🏻마음이 묵직한 기분일 때는 이런 무해하고 따뜻한 소설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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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다음 잠에서 깨어날 때 슬픔이 누그러지리라.
• “누그러지리라... 그게 좋았어. 한밤에 자다가 깼을 때 왠지 서글플 때가 있잖아? 그때 따뜻한 차를 만들어놓으면, 다시 잠에서 깰 때도 덜 슬프다는 게.

 

• 내년 겨울에 또 물어봐, 자꾸자꾸 대답할게.

 

• 가끔 생각한다.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을 열 번 읽는 편이 더 많은 걸 얻게 한다고.
• “죽고 싶어.” 반은 어리광이었는데. “같이 죽을까?” 해원이 쳐다보니 이모의 얼굴은 그저 담담했다. “네가 죽고 싶다면 나도 지금 사라져도 괜찮아.”

 

• 그가 뒷정리하는 모습을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으니 서서히 걱정이 옅어졌다. 괜히 예민해져 그랬을 뿐 모든 게 그저 한파로 인한 해프닝이고, 시간이 지나면 웃게 될 일인 듯한 낙천적인 기분이 찾아왔다. 혼자 있지 않아도 되는 이 밤이 고맙고, 애인이나 가족이 아니어도 좋은 누군가와 한 지붕 아래 같이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풀어졌다.

 

• 숲속의 폐가 같은 빈집에 어째서 은섭이 마음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예사롭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모르는 지난 날들이 그에게 있으리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 그곳은 어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진짜 장소들은 대부분 그렇다.
• 산에 묻힌 남자를 생각한다. 그의 인생은 시작도 끝도 미상에 가까웠다. 어떤 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눈에 안 띄는 곳에 들어가 숨듯이, 그도 그렇게 했다. 대신 어린 아들을 하나뿐인 친구에게 부탁해 산에서 내려보냈다. 그는 평생 진짜 사람을 알아볼 늑대 눈썹을 얻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말과 표정이 일치하지 않으니까, 말을 듣지 말고 표정을 읽어야 한다'고 그는 자주 되뇌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절반만 옳았다. 사람들은 표정 또한 자유롭게 바꾸고 지어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애초에 읽으려 들지 않는게 나을 때가 있다. 보여주는 걸 보고, 들려주는 걸 들으며, 흘려보내면 그만. 혼자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고, 외로움에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대하는 바가 적을수록 생활은 평온히 흘러가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게 생기는 건 괴롭다.

 

• 그래 가보자. 너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
  • 나중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은 나중에 맡겨버리는 것도 필요하지.

 

• 그래서 어느 날 학교를 안 나가고 산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나는 불행하고 슬퍼야 하나? 그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행할 조건이 갖춰졌는데 어째서 불행하지 않은 거야, 라는 폭력적인 질문. 그 질문이 옳은가.
• 내게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날 산을 내려왔던 기억.

 

• 하지만 아픔의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이 아프다고 누구나 세상을 버리는 건 아니었고, 남은 사람은 덜 아파서가 아니라 살아가려고 끝까지 애썼기 때문이었다.

 

• 이 밤, 너를 오두막에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을 해. 내 몸에 등을 대고 깊이 잠든 너를 이대로 이불로 감싸 안고 숲의 오두막으로. 그리고 백 일쯤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봄이 오고 벚꽃이 피었다 지고, 산길에 라일락과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찌를 때도 우리는 그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불을 때고 밥을 지어 먹으며 숨어 있겠지. 책방? 알 게 뭐야. 사랑하는데 책 따위가 필요할 리 없잖아.

 

• 요즘의 나는 사랑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었고, 또 무엇인가를 잃었다. 잃었음을 알고 있는데, 새로 얻은 게 좋아서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  네가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때도 작가일 수 있었어. 너만이 나를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온전히 믿어준 사람이었던 것 같아. 늘 고마웠어요. 사랑해.

 

• 오랫동안 기록을 계속하다 보면 오늘 날짜의 부피가 생긴다. 6년 전 오늘. 3년 전 오늘. 작년과 올해의 오늘. 겹겹이 층이 쌓이는 페이스트리 빵처럼 그 속에 기억과 장면들이 깃든다. 언젠가부터 겨울이 오면 H가 내려왔고, 그녀를 모른 척 바라보고, 가끔 서로 말을 나누고, 나는 겨울마다 어떤 날짜들의 부피를 쌓을 수 있었따. 그렇게 포개지는 일상들은 딱히 달라질 것이 없어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다 올겨울 그녀가 내게 다가왔을 때,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을 때, 그 날짜들은 더 이상 균일한 평안함으로 쌓이지 않고, 오늘의 부피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내년부터는 겨울이 와도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가울 겨울의 부피.

 

• “지금 오두막 상태는 추워. 그게 유일한 이유야. 내 공간? 그게 뭔데. 그게 뭐라고 널 못 오게 막는다는 거야. 단순히 춥고 불편하기 때문이고, 그 말에 숨은 다른 뜻은 없어. 그 말 그대로라고.” “그 말 그대로야. 항상 너한테는.”
• “한심하지 않았어?” “아니. 언제나 예뻐. 늘 그랬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예뻤어.”

 

• 인생의 고통이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다 소용없는 건 아닐 거라고... 고통을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거기 있고, 다만 거기 있음을 안다고 말해주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고 위로를 전하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