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stone combination

 

구에게 물었다. 구가 만약 야구선수라면 어떤 포지션을 맡을 것 같냐고. 구는 유격수라고 했다. 숏스탑. 2루수와 3루수 사이에 있는 그 역할. 2-3루간에서 내야 수비의 핵심을 맡는 역할. 주로 순발력이 좋고 어깨가 좋은 선수가 맡는 역할이라고 했다. 요며칠 야구를 열심히 본 터라 유격수의 역할을 어렴풋이 알게 되기도 했고, 워낙 어깨가 좋은 구니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무엇일 것 같냐고 물었다. 구의 대답은 2루수.

너는 당연히 2루수지.
왜 2루수야?
그냥. 2루수는 진짜 중요해.
어떤 역할인데?
포수의 사인도 잘 읽어야 하고, 더블플레이에서도 중요하고,
하여튼 수비의 핵심이야. 키스톤 콤비라고 있어.
그렇구나.. 키스톤 콤비..
나중에 찾아봐.
응

어느새 역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내리는 통에 아침의 대화는 금세 잊어버렸다. 시덥잖은 질문에 건조한 답이었으므로.
점심을 먹고서야 그 단어가 생각났다. 오후 늦게서야 책상에 앉아 ‘키스톤 콤비네이션’을 검색했다. 아래와 같은 글이 나왔다.

 

건물을 지을 때 제일 중심이 되는 지점에 박아 넣는 돌을 키스톤(keystone), 우리말로는 ‘쐐기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야구장에서 2루 베이스를 가리킨다. 홈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볼 때 2루 베이스가 딱 중간에 박혀 있어 꼭 쐐기돌 같다고 해서 붙인 말이다. 이 키스톤을 중심에 놓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눈빛을 주고받으며 손발을 맞추는 것이 2루수와 유격수다. 2루수와 유격수는 가장 많은 타구를, 그리고 가장 강한 타구들을 처리하는 가장 바쁜 수비수들이다. 그래서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 송구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맡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빠뜨려서는 안 될 능력이 또한 2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파트너와의 유기적인 협조 플레이 능력이다. 그 두 명의 수비수가 2루에 주자가 있을 때 투수가 던지는 견제구는 누가 받을 것이고 도루를 잡기 위해 날리는 포수의 송구는 누가 받을 것인지, 혹은 병살을 처리할 때는 어떤 호흡 어떤 리듬으로 어느 공간쯤에 토스를 할 것인지 서로 정확히 가늠하고 분담하지 못하면 수비망은 일순간 뒤엉켜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두 명의 수비수가 2루 베이스를 가운데 놓은 채 손발을 맞춰 벌이는 수비동작들을 키스톤 콤비네이션(Keystone Combination)이라고 부른다(우리나라에서는 2루수와 유격수를 묶어서 ‘키스톤콤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https://namu.wiki/jump/TfBX97Buy8pD835crro3YAmJWHaiypfrijfGWwcBYfd0UPw9JKaqG%2F5sZDukAEacy6C4TrYJarIO8aAc6o6RoQ%3D%3D

…이렇게 무심한 사랑고백이라니.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웃카운트가 이 콤비에 의해 나오기 때문에 내야 수비의 핵심 그 자체라고 했다. 분명 야구 상식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중인데, 스마트폰 화면을 채운 모든 활자들이 ‘너는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옆에 있을거야’로 읽혔다. 설명글에는 속된 말로 ‘지리는’ 4-6-3 플레이 영상도 있었다. 타자가 친 땅볼을 2루수가 달려가며 잡고, 잡자마자 달려오던 유격수에게 토스해주고, 유격수가 공을 바로 캐치해 곧장 1루로 송구하여 뛰어오는 타자를 틀어막는 호수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플레이에 감탄을 하며 그 ‘지리는’ 짤을 열번을 넘게 돌려봤다. 

세상 통쾌한 수비의 장면을 보고있는데 이상하게도.. 목에서 자꾸 눈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날선 말을 들은 탓에 한 마디만 더 들으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중심이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 계단을 한칸한칸 내려가면서 거듭 생각했다.

너는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옆에 있을거야.
         너는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옆에 있을거야.
                 너는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옆에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