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어느 후배가 물었다.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희망도 체념도 없이, 탐구자의 마음인 것 같았다. 어떤 이유든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잘 살아야한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되는대로 지내는 것 같을 때마다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고 했다.

얼마 전 만난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다 친해진 어느 동생이 알고보니 젠더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쓸까 잠시 고민했으나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축소하여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고통을 겪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가까이에서 피해자를 접하고 만나게 된다. 직접 알게 되는 날도 건너건너 듣게 되는 날도 있으나 변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어쩌면 지금 나의 바로 옆에서도 어느 피해자가 온 힘을 다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그냥 냅다 계좌번호를 묻고 싶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도 뭣도 필요없고 그냥 오늘 하루만큼은 건강히 잘 먹고 잘 자자고 밥 한끼라도 사고 싶다.

나는 왜 태어났나? 왜 태어났는지 이유 같은건 모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나가는 것인지도 단언하지 못하겠다. 그런건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며 큰소리 내는 사람을 외려 사기꾼으로 의심해야마땅할 질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나와 똑같이 정답을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헤매기 위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도 왜 태어났는지는 모르니까, 이왕 태어난 김에 조금 더 옆에 앉아있겠다고 말하기 위해서. 말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하기 위해서. 여기 헤매고 있는 나를 보고 당신만이 길을 잃은건 아님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 서로의 이정표가 되어주기 위해서. 정처없고 남루할지라도 비겁하지는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