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80일차 - 가족이 된다는 것

신입사원 일기 80일차 -

작년 12월부로, 아니지 정확히 따지자면 2월부로
내겐 새 가족 7명이 생긴 셈이다.

그동안은 그것을 딱히 실감을 하지 못하다가
팀 배치 한 달 차가 되니 조금씩 실감이 났다.


특히나 실감이 났던 날은
어느날 문득 팀장님 말씀을 듣고부터.


운 좋게도 팀 배치 후 바로 사업을 하나 맡게 되어서
걱정되기도, 설레기도 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특히나 내가 이제는 온전한 담당자로 자리매김해야하다보니
결정의 순간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책임의 무게도 아직은 낯설고,
혹여 이것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러운 마음도 많이 든다.
나의 작은 실수가 팀에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



그 날 아침에도 중요한 결정 사항 때문에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팀장님께서 문득
“너도 이제 가족이니까, 어느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직접 결정을 해봐”
비슷한 말을 하셨다


사실 “너도 이제 가족이니까”라는 말에 주의가 집중되어서
그 뒤의 말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충 저런 이야기였다.

너도 이제 가족이니까, 니가 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면 우리가 그에 따르겠다, 하는 말씀이었는데

여러날째 울림이 남는 말이었다.


미생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크게 혼이 난 장그래의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오상식 팀장이
“우리 애”라고 말하는 것에 크게 기뻐하던 장그래의 모습이 생각났다.




두번째 일화는 점심자리에서였다.
우리팀은 각자 약속들이 많아서
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많지는 않긴 한데
그 날은 유독 나 혼자만 약속이 없고 모두들 있어서
혼자 남겨질뻔한 날이었다.

그냥 식비카드로 동기랑 맛난거 먹어야지,하고서
급하게 동기와 약속을 잡았는데
그 사실을 안 과장님이 나를 외부 미팅자리에 데려가셨다.
근데 예약을 해두었던 방이 간신히 7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식당측에서 난감해 했는데
과장님 두분이서 어떻게든 내가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내가 끝까지 괜찮다고 혼자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도
식당측에 양해를 여러번 구해가면서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음식도 이것저것, 멀지 않냐며 챙겨주셨는데
사실 대단한 자리도 아니었고, 밥쯤이야 혼자 먹어도 되지 하며 보냈을 수도 있는데
신경을 써주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사소한 일인데도, 가족으로 생각해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어느 한 사람의 결정과 노력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보니
특히나 팀의 경우 서로 더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정말로 가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피와 살을 나눈 혈연 관계의 사람들과도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데
하물며 생판 남과의 관계는..
정말 가족같을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족같을 수도 있다.


신입이야 모든 것이 처음이니 생판 모르는 남과 가족이 된다는 것이 당연히 어렵지만
선배의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오는데다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것이 많고, 일을 오래한 입장에선 분명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이 보일 것이다.
부모님이 아닌 이상 그런 것이 미워보일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선배의 입장에서도 이 신입을 어떻게 가족으로 맞을 것인가, 하는 것은 고민이 되는 부분일 수 있다.
맞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그냥 섬처럼 내버려두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아서 커라, 하고.





그런 의미에서 팀장님의 저 말씀이 참 감사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초짜인 나에게
무언가를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감사하고,
내가 나의 결정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신입에게 그런 책임을 맡기는 것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더 수고로운 일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매일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그릇이 크신 분 같다.
무얼하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어떤 일을 하든 한치밖을 내다보는 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특유의 여유랄까, 재치가 있어서
상사든 부하직원이든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신다.

본인의 단점에 대해 지난 회식에서 한 과장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것을 그냥 허투루 듣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에 옮기시는 대단한 분이다.

그러고선 회식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셨다.
(단점을) 안하려고 하니 또 되더라고, 너의 말이 나의 인생에 변곡점이 되었다고.

정말 그릇이 보통이 아닌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분을 모시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과장님을 비롯한 다른 선배님들도 마찬가지다.
나와 업무적으로 가장 많이 묶여있는 과장님은 늘 먼저 다가와서 내가 궁금해할법한 것을 알려주시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
굉장히 큰 도움..

짬을 내어 설명을 하고, 질문을 들어주는 것에서 나아가서
나에게 필요하다싶은 것을 먼저 알려주는 선배라니.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게 만드는 선배이다.


팀의 가교 역할을 해주시는 다른 과장님 두 분은 내가 어색하지 않도록 늘 마음 써주신다.
귀기울여 들어주시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시고.

차장님은 늘 유쾌하시다. 차장이라는 위치에 있게 되면 막내의 말 따위 대충 들어넘길 수도 있을텐데
귀 기울여 들어주신다.
그리고 자신의 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유쾌하게 잘 처리해내신다.

바로 위 선배님들은 센스가 대단하다.
일 센스며 그냥 생활적 측면에서도
빠르게 파악하고 즐겁게 받아쳐내는 센스가 내가 닮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다.


지난 주 처음으로 팀 전체 저녁 회식이 있었는데,
그 주 금요일 아침 문득 큰 행복감을 느꼈다.

이 공간에서 이런 팀장님과 선배님들을 보며 성장할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우리 팀의 개선점은 나뿐인 것 같다.
나만 잘하면 돼.. 하하




믿어주시고 아껴주시는만큼 잘 해내보이고 싶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동경하고 존경하는 팀장님과 선배님들의 좋은 모습들을 닮아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팀 구성이 바뀔 것이 두렵다.
최대한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

열심히 흡수하고 쑥쑥 성장해야지.

이제 곧 수습기간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