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습 683일차 - 온전하고 완전한 의지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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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나날들을 버텨내다 보면
하루에도 정말 온갖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겪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사람과 관련한 일들은 고질적으로 풀기 힘든 문제들인데, 문제는 그런 일들이야말로 우리를 잠자리까지 따라와 괴롭힌다는 것이다.

털어놓을만한 창구가 없었을 때는 그런 일이 있어도 그저 삼켰다.
그나마도 퇴근 시간까지만 애써 삼킬 수 있었고, 회사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한낮부터 삼킨 모든 것들이 다시 눈물로 튀어나오곤 했다.
나중에는 퇴근 시간의 구애없이 급히 화장실을 찾아 채 삼키지 못한 감정들을 혼자 토해내곤 했더랬다.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될 사람인가?’
직장에서의 시간이 늘어가고 고된 일이 쌓이고 선배들의 면면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위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기준에 걸맞는 선배를 하나둘 알게 되었다.


털어낼 수 있는 선배가 생기기 시작하자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다.
어떤 선배에게는 회사 생활 전반의 일을 상의할 수 있었고
어떤 이에게는 일을 하다 막히는 부분을,
어떤 이에게는 상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말할 수 있었다.
분명 친구가 주는 위안과는 다른 종류의 위안이었다.

모든 종류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선배들도 있었다.
정말 보잘것 없는 공상에 불과한 작은 제안부터,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날의 욕이라거나, 풉하고 실소가 터지는 작은 에피소드까지. 말하기가 꺼려지는 것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보니 자연히 많은 면에서 기대게 되었다. 나중에는 절로 그이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문제는 그런 선배들이 자리를 비울 때였다.
갑자기 거의 모든 이야기의 채널이 닫혀버리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고 있었구나, 싶어 아차했다.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따위는 없다.
그것이 대천사라 해도, 한낱 감정의 쓰레기통이라 해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부터도 누군가의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처가 되질 못하는데 말이지?


처음에야 나의 모든 내밀한 이야기를 다 헤아려 살펴주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 그 자체이며
헛된 기대를 높여세울수록 실망도 커진다.
때로는 비관주의가 도움이 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완벽한 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는 책(관계, 알랭드보통 인생학교) 속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완전한 의지처가 없다하여 의지할데 없는 비련한 영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시작해보려는 지금 당장은 무척이나 고단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안다.
이것도 수습 중인 내 인생의 한 장면이겠지. 그리고 다른 장면들이 연이어 흘러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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