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일기

 

1. 10월 내내, 버거운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내야 했다. 11월이 되고서야 돌아보니 개중에는 걱정보다 가뿐히 해낸 것도 있고, 간신히 해낸 것도, 아직 미완으로 남은 것도 있고.. 해내지 않아도 됐던 것도 있네. 그냥 정신 차려 보니 다 지나가긴 지나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다. 그 속에 있을 때는 모든 순간이 지옥 같았는데, 조금은 벗어난 지금에서야 하루에도 수시로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어떨 때는 그냥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많은 아픔이 해결되는 것 같다.

 

2. 신승은의 노래 가사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서 몇날 며칠을 들었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지.

너의 모든 슬픔의 정류장에
빼놓지 않고 정차하는
우는 너를 다 태우는
버스가 되고 싶어

두통은 우리 집에 두고 가
내가 이따 가서 치울게

 
두통을 집에 두고 가도록 해주는 이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3. 업무에 매몰되어 내 시간이 너무 적게 남아버리자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마음도 기력도 없어서, 이야기의 경계를 허문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냈다. 시답잖은 이야기든, 깊은 이야기든 경계 없이 편안히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만 시간을 채웠다. 꼭 필요했던 타이밍에 꼭 필요했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과, 마음껏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사람들. 정말 다 놓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누더기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그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언젠가 그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나의 마음과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스스로에게는 쥐어주지 않는 말들이 그들을 보고 있을 때는 절로 나온다. 그들에게 쥐어주는 말로써야 나에게 쥐어줄 수 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모든 것이 돌아오네.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4. 조금은 지쳐있고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집에 다녀왔다.

 

 

5. 노랫말처럼, 우린 단지 흐를 뿐이다. 그저 함께 흘러가고 있는 지금이 아쉽고, 사무치게 슬프고, 좋다. 다시 못 올 시간들이란걸 알아서 늘 그립고, 짜릿하다. 어떤 것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것과 멀어지는 법을 더듬더듬 배운다. 배운다기보다는... 배워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멀어지고도 지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줄곧 생각한다. 이별이 낯설지 않도록 지금부터 미리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상담에서 선생님은 내가 차츰 특정한 감정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어떤 날은 그런 것 같다는 확신이 들다가도, 어떤 날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헷갈린다. 그걸 숨기기 위해 자주 묵음처리를 한다. 어떤 감정은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곤 하니까. 정말 중한 말, 정말 내뱉고 싶은 깊은 진심은 그냥 묵음으로.

작년에 썼던 글과 올해 쓴 글을 연이어 읽어보았다. 마음은 더 깊어지고, 말은 더 줄어든 듯하다. 아마도 수많은 말들을 묵음처리 해두었기 때문이겠지. 묵음 처리된 수많은 말 가운데서, 그냥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