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조차 이해될거야

- 요즘 나는 그레이아나토미를 다시 이어보는 중. 외과 병동에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매트릭스처럼 촘촘히 그어져있다. 그 모든 소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화를 내고, 울고, 웃는다. 그 지점에서 묘한 위안을 얻게 된다. 저렇게 생사를 다투는 순간에조차도 한편에서는 소소한 인생의 드라마가 일어난다는게. 모든 것을 앗아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앗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게 위로가 된다. 자꾸만 소란해지기만 하는 나의 삶에도 저런 소소한 순간들이 있다는 감각을 메러디스를 보며 더듬더듬 되찾는 것 같다.

- 얼마전 정미에게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엉망진창이고, 어떤 면에서는 완벽하다고 말했다. 지금 나의 상태를, 2021년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믿었던 사람에게 크게 실망하여 다치고, 사랑이 찾아오고, 오랜 이를 이별하고. 몰아치는 속에서도 삶이라 일컬을 것이 일어난다는게 무척이나 숨 막히기도, 숨을 쉬게 하기도 한다.


-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서처럼, 동면의 시간을 갖고 싶다. 긴 시간 수면 아래로 들어가있다 나오면 내겐 어떤 것들이 남아있을까. 풋살에게 동면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별안간 잠수를 타고 사라지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 불안하겠지 당연히, 근데 너는 그런 느낌을 준 적이 없어. 잠수조차 이해될거야.

- 아무래도 불안의 천적은 이해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