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없이 행복 말하기

- 힘이 들 때,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여행의 기억들을 꺼내어보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근심없는 얼굴로 이곳저곳을 다니던 때의 기억. 2박 3일부터 2주까지, 대만에서부터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을 훑다보면 금세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들곤 한다.

- 여행지에서는 늘 거리낌없이 행복을 말하게 된다. 도우루 강변에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한낮의 맥주를 즐길 때에도, 가스웍스파크에서 일몰을 즐길 때에도, 다낭의 호텔에서 아침 수영을 즐길 때에도 ‘아, 행복해-‘ 하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을 한 장면 한 장면 만끽했기 때문에 습도, 온도, 바람에 날리던 머리카락의 느낌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쉽게 꺼내어 먹을 수 있을만큼 촘촘하게 저장된 기억이다.






-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일상에서의 순간은 꺼내어 곱씹지 않을까. 나는 여행지에서만 행복했던가?


- 물론 지옥철로 하루를 시작해 야근으로 끝나는 일상이 여행지에서의 하루만큼이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요인은, 왜인지 일상 속 순간에 대해 ‘아, 행복해-‘를 말하는 일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인색해진다는 데에 있었다. 특별한 장소, 특별한 때에만 속하는 네글자 같아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한 기분이 들라치면 자꾸만 셀프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로는 소확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행복의 순위를 매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행복은 큰 행복, 일상에서의 기쁨은 그보다는 조금 덜한 행복, 이런 식으로.





-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마음먹고 줄곧 행복만 한다. 오로지 그것만 한다. 그에 비해 우리의 일상은, 마음먹고 행복만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 속 변수들이 수시로 치고 들어온다. 여행지에서의 돌발상황은 많은 경우 추억할만한 에피소드가 되지만, 일상 속 과속방지턱들은 금세 우리의 하루와 기분을 전복시킨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늘 이 순간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느껴질라 치면, 금세 전복된 후의 내가 왜 그랬냐고 후회하며 허벅지를 내리칠 것만 같은 섣부른 걱정이 든다. (대체 그딴걸 왜 걱정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아 오늘 나 좀 행복한데? 하는 나의 발목을 슬쩍슬쩍 잡는다.




- 마음 먹고 행복만 했던 여행지에서의 묵은 기억들만으로는 앞으로의 수많은 날들을 모두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일지 모른다. 마음이 허할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고, 스스로를 안아줄 품이 필요할 때 나를 껴안아 줄 기억들을 여행지에서만 쌓을 수 있도록 좁혀둔다면, 수요는 언제나 공급을 압도할 것이고 우리는 늘상 목마를 것이다.



- 늘 목말라하며 과거를 되짚는 일이 갑자기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 일상에서도 망설임 없이 행복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지금, 오늘, 여기부터 바로 행복해보기로 했다. 꼭 아 행복해 모먼트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마음에 숨이 드는 일상 속 어느 장면이든 꼭꼭 씹어서 내 안에 저장해둘테야. 저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일상의 순간에도 즐겨찾기 하트를 여기저기 눌러둘 것이다.





- 오늘 하루가 행복했다고 말하기 위해 이렇게나 긴 서론이 필요했다. 요즘의 나는 행복하다. 이건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그냥 오늘 나의 상태명. 매일 같이 고난인 회사 생활 속에서도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좋아하는 이의 눈이 나를 담고 있고, 내 하루를 어느정도 내 뜻대로 굴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부러 이렇게 좋은 것만 종합하지 않더라도 역시나 그렇다. 마트에서 무심코 산 딸기가 무척이나 달고 맛있어서, 동생에게 들은 히노끼탕에 대한 에피소드에 렌즈가 빠지도록 웃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귀여운 거울셀카를 건져서 행복하다. 나는 이제 행복하기를 망설이는 시간이 아깝다. 이제 그냥 그렇다고 말할래!







그런 의미에서 남겨보는 2월의 하트모먼트🤍

🤍#1, 집안일을 마치고 좋아하는 잠옷을 입고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는 시간

🤍#2, 말도 안 했는데 서로 같은 마음으로 같은 것을 사온 순간

🤍#3, 오로지 나를 위해 차려준 밥상

🤍#4, 하루 틈사이 책갈피 같았던 커피타임

🤍#5, 우연히 집어 온 딸기가 올해 최고존엄한 맛일 때

🤍#6, 내 마음에 드는 하루를 보낸 날

🤍#7, 우울해지려는 찰나에 기분전환을 위해 시킨 최애 디저트

🤍#8, 좋아하는 노래의 새 버전을 듣고 한번 더 반해버린 순간

행복해보자, 지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