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에 대하여

- 단언컨대 수정은 극성의 엄마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순간을 치열했던 고등학교에서도 나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 부모를 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학교는 모두가 커다란 목적을 안고 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으니까. 그곳에서 나는 수시로 우리 엄마아빠는 조금 결이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 숨통이 트이는 날도 있었지만 가끔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더랬다. 나도 내가 알아보기 전에 엄마아빠가 극성으로 알려주었으면,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고심하기 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들기도 했다. 바람과 달리 엄마아빠는 한결 같았고 나는 겨우 나의 힘으로 어떤 시절을 났다. 그래서 서툴렀고 그래서 후회한 것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런대로 살았다. 그런대로도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생은 그런대로도 살아진다는 사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냐에 달려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수정은 배웅하는 엄마였다. 나의 생이 크게 코너를 돌 때마다 수정이 거기 있었다. 중요한 어떤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수정은 의식처럼 거기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고등학교 시험날이 그랬고, 수시를 보러 갔을 때도, 미국으로 출국하던 날에도, 연고가 없는 지방 어느 도시에서의 최종 면접을 갈 때에도 수정은 나를 직접 배웅해주었다. 하다못해 새터를 가는 날까지도.


- 입구까지 동행해 준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무척 설레고 흥미롭고 동시에 낯설고 긴장되는 삶의 챕터들이었다. 그랬기에 수정이 나를 바래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어렴풋이 상상되곤 했다. 시간이 너무 지난 후라 그때의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지는 못하였고. 흐뭇함과 뻑적지근한 마음이 교차했지 않을까,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 지금 생각해보면, 배웅은 나름대로의 삶을 전개할 딸을 위해 수정이 해줄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위로이자 응원이었던 것 같다. 나를 배웅하는 길마다 수정은 내 작은 손을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춰주었다. 새터를 가던 날 아침은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만 했었고 눈이 무척 많이 와 초행길 길눈을 더 어둡게 하였음에도, 수정은 당신도 처음인 그 길을 몇번이고 와본 사람처럼 걸었다. 미국에 가던 날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 그 시간이 수정에게도 어떤 종류의 위로를 줄 수 있었다면 좋겠다. 자그마한 아이가 훌쩍 커서 낯선 세계로 나아가려고 할 때, 그 시작을 동행해주었다는 사실로부터 어떤 안심을 얻었다면 좋겠다. 새로운 챕터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잡고 걸어준 경험이 수정에게도 외롭지만은 않은 일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정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려고 할 때 나는 어떤 응원을 해줄 수 있을까. 나에게도 그 배웅을 잘 해낼 기회가 오래도록 주어지기를.

<도망가자>와 선우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