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조각일기

1. 주말 도망은 고성으로 갔다. 거기서는 한 사람에 대한 생각만 났다. 이해해 줄 것 같은 얼굴이 그 뿐이었나보다. 출근하고 이튿째 날에도 이런 도망을 쳤었다. 산책을 하다보니 성당 앞이었다. 적당히 그늘진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되찾아온 어느 날의 이야기를 했고 맘 먹은대로 써지지 않는 글과 사람에 대해 말했다.
고성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패들보드를 타고 싶었는데 그것은 타지 못했다. 아쉬워.. 11월에는 서핑이나 패들보드 둘 중 하나는 하고싶다. 패들보드 대신 리클라이너에 앉아 책을 읽었고 영랑호가 보이는 아늑한 공간에서 요가를 했다. 짐을 미니멀하게 챙겨갔으므로 요가도 입은 옷 그대로 했다. 그런대로도 괜찮았다. 근육을 쌓는 운동만 몇년을 한 터라 근육을 늘리는 운동은 고통 그 자체.. 그래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호흡을 할수록 아주 천천히 딱 맞게 늘어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2. 2주를 빠진 수영에서는 조금의 진전이 있었다. 이번 진도는 왼쪽 귀를 담근 채 측면을 보고 헤엄치는 것. 생각보다 쑥쑥 잘 나아가져서 세바퀴를 금세 돌았다. 옆을 보고 헤엄칠 때는 앞만 볼 때보다 훨씬 여유로운 템포의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인어 같기도 하고.



3. 필라테스 선생님이 바뀌었다. 낯선 루틴과 강도에 적응할 일만 남았다. 운동이 끝난 뒤의 마사지 루틴은 웬걸 적응할 필요도 없이 바로 맘에 쏙 든다. 적당히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해주는 것도 좋다.

4. 고마웠던 사람에게 드릴 문장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 고작 서너줄짜리 분량인데 고민은 여러줄. 이제 그분의 집 한켠에 놓이게 될 그 문장들이 오래도록 빛을 머금고 있으면 좋겠다. 식이 끝나고 자리로 오니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 벗과의 대화. 이별 앞에 약해진 마음들끼리 허물없는 대화를 했다.

5. 지금 다시 보는 드라마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남자를 애타게 하는 스킬을 알려주는 이사에게 염기정이 하는 말. 근데, 애타는 그 기분은 불쾌 아니냐고. 서로 채워주기만 해도 모자라지 않냐고. 왜 애정을 그렇게 찔끔찔끔 주어야하느냐고. 그러게, 왜 유쾌라고 생각했지.
6. 어느 날의 상담에선 선생님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나 스스로 돌아보고 괴로워하고 수정하면서 사느냐고. 내게 부족한 것들이 너무 크게 느껴진 날이었고 갈 길은 아직도 멀어보여서 물은 말이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상담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고, 나를 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그러게, 왜 타인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