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하루가 끝나고

 

 

1. 길었던 출장에서 돌아와 짐을 풀고 드뷔시를 들으며 쓰는 글. 지긋지긋한 하루가 끝났다. 새해 다짐도 아닌 어떤 것을 하며 야심차게 시작했건만, 어쩐지 내내 되는 게 하나 없다는 말이 떠오른 하루였다. 하지도 않은 일로 내내 (지난주부터 이어진)싫은 소리를 듣고, 죄송하지 않은 일에 죄송하다고 하며 오전이 지났다. 그러느라고 해야했던 것은 하지 못했다. 결국 이도저도 지우지 못한 나의 체크리스트. 그래도 넉넉히 이해해주는 선배들 덕분에, 한껏 어지러운 마음을 거두고 집으로 왔다. 4일짜리 짐가방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그냥 길에 버려버리고 싶었는데 정말로. 지구를 이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지고 왔다.

2. 그나마 온전한 조각을 붙들 수 있었던 건 두시간 덕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둘과 보낸 각각의 한 시간. 오후의 카페에서는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며 서로의 슬픔을 녹였고, 비오는 퇴근길에는 끝의 끝에서도 나의 편을 들어주는 이와 짐을 나누었다.
절망에서 끌어올려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에게 아무리 나쁜 것이 주어지더라도, 마음 붙일 수 있는 단 두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오늘처럼. 그리 생각하며 위로했다. 지난주의 나를 끌어올려준 건 조성진이 연주한 리스트의 위로였다. 우연히 만난 연주를 밤 내내 들었다. 슬픔에 잠긴 누군가에게도 건넸다. 운이 좋다면 그의 한시간도 그 연주가 붙들어주었을 것이다.

3. 6년째다 이제. 아직까지도 매일같이 낯선 이 일을 옆자리 누군가보다도 오래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지난주에 한 선배가 건넨 말이 자꾸 맴돈다. 여기서 이 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너랑 나 뿐이라고. 그 말을 한켠에 껴안고도 왜 이리 자주 뒤돌아보게 되는지. 하루는 끝나가지만 한 주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과 모레 그리고 월요일로 이어질 시간 모두 할애해야하지만 매일 두개의 행운쯤은 올테니까. 그렇게 믿고 자련다.

5. <깃털>, <인생의 역사>를 읽고 있다. 한 권은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을 내것처럼 이해하고 싶어서, 한 권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인생을 이해해보기 위해서.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